도시 속 심리 공간학

도시에서만 생기는 ‘이상한 피로감’

jootopia-net 2025. 12. 6. 15:20

도시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만 생기는 ‘이상한 피로감’의 정체

도시에서만 생기는 ‘이상한 피로감’
몇 분이라도 소리와 시선이 적은 공간에 머물러 보자

 

잔여 감정

 도시에서 몇 년 이상 살아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순간이 있다. 특별히 힘든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남아 있는 느낌이다. 몸이 아프다기보다 머리가 묵직하고,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닌데 괜히 에너지를 소모한 것 같은 감각. 나 역시 처음 도시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이 감정을 단순한 적응 문제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 피로는 더 미세하고, 더 일상적인 형태로 남았다. 무기력이나 우울 같은 강한 감정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잔여 감정’처럼 하루 끝에 조용히 붙어 있었다.

 

도시의 피로

이 경험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건, 도시를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였다. 며칠 간 지방의 작은 동네에서 지내고 난 뒤 같은 출근길, 같은 건물 숲을 다시 마주했을 때 마음의 반응이 명확히 달라져 있었다. 도시의 풍경은 변한 게 없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엘리베이터 안의 정적, 신호를 기다리는 발걸음들, 동시에 쏟아지는 소리와 시선들. 이 모든 요소들이 말없이 신경을 사용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식했다. 도시의 피로는 일을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응하고 있는 상태’에서 축적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됐다. 도시 심리 공간의 특징은 휴식과 긴장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있어도 완전히 쉬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야에는 여전히 사람, 소리, 정보, 움직임이 들어오고, 우리는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속 처리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몸은 멈춰 있어도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도시의 피로는 급격하게 몰려오지 않는다. 대신 아주 천천히, 알아채기 어려운 속도로 쌓인다. 어느 순간 “왜 이렇게 지치지?”라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명확한 원인을 말하기는 어렵다.

 

내 반응의 밀도 조절

     이 피로를 다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도시를 부정하거나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반응의 밀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몇 분이라도 소리와 시선이 적은 공간에 머물러 보거나, 의도적으로 아무 정보도 소비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감각은 빠르게 회복된다. 중요한 건 ‘잘 쉬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내가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자극에 반응했는지를 점검해보는 태도다. 도시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 소모를 관리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의 지금까지 50편의 기록은 그 사실을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을 통해 정리한 하나의 메모에 가깝다. 도시는 계속 움직이지만, 우리의 감각까지 그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기록이다.